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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숙현 교장·박주용 주임교수·박윤철 교수 인터뷰
■ ‘한옥학교의 메카’ 청도한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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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철 교수가 청도한옥학교 내 자하원에서 93기 입교생에게 연장자루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
청도 한옥학교 설립자 변숙현 교장은 인복이 많다. 그는 박주용·박윤철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학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성격과 스타일은 각각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상호 보완재로서 역할을 한다. 변 교장은 목수가 갖춰야 할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학생에게 어른의 역할을 한다. 박주용 교수는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강조한다. 박윤철 교수는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성낼 줄 모른다. 한옥학교의 학풍과 화목한 분위기는 올곧은 스승의 가치관과 가르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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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한옥학교의 박주용 교수, 변숙현 교장, 박윤철 교수(왼쪽부터). 이들은 한옥학교의 산증인이자 역사다. |
한옥학교 학생들은
나무와 흙을 좋아하는 사람들
한옥짓기엔 공동체 정신 필요
목수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
나무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대목수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야 한다
다름을 인정 않는 것은 아집
한옥 가격 낮추고 편리함 도모해야
제대로 된 한옥 대중화되려면
국민소득 4만 달러는 되어야 가능
◆변숙현 교장=“건축(建築)이란 단어는 일본식 용어입니다. 우리 조상은 건축을 ‘영건(營建)’이라 했습니다. 건축이 집을 짓는 행위 자체를 일컫는 것이라면 영건은 집을 짓고 경영하는 과정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차를 끓여 마시면서 참선하는 것을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는데 집을 짓는 행위도 선건일미(禪建一味) 즉 수행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이란 말 대신 영건이란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변숙현 청도한옥학교 교장(59)에게선 흙과 나무냄새가 난다. 개량한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한옥은 짓는 게 아니라 나무처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모난 땅이라도 나무를 심으면 그 땅이 살아나는 것 같이 한옥이 그렇습니다. 한옥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익어 발효되는 게 바로 한옥입니다.”
변 교장은 청도토박이다. 풍각면 봉기리 밀양변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청도에서 고교때까지 자랐다. 영남대에서 건축학 학·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우연히 한옥의 깊은 맛에 빠져들어 졸업 작품을 ‘한국의 초가’로 하게 된다.
그가 전통건축을 전공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통건축분야의 대가인 김일진 교수를 만나고서부터다. 이후 석사과정을 마치고 군대에서 공병장교로 근무하면서 토목, 교량, 전기, 설비 등 건축 관련 일을 했다. 졸업 후엔 7년간 시공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강사로 전통건축을 가르쳤다.
“영남대 등 전국의 대학에서 20년간 전통건축 강의를 했습니다. 한옥학교를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대학생캠프를 하다 중국의 칭화대를 방문한 뒤부터입니다. 중국에선 전통건축을 가르치고 서양건축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어린이캠프를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흙집과 구들을 설명할 계기가 있었는데 그게 한옥건축도량을 세운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변 교장은 13년전 남산 언덕배기 선산 비탈진 곳에 사재를 털어 한옥학교를 설립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다. 학생들과 함께 지은 건물이 이 학교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한옥을 지으려면 공동체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한옥학교를 찾는 학생은 나무와 흙을 좋아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목수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나무를 다스릴 줄 알아야지요. 학교에선 한옥정신, 이론과 설계, 시공 등 네 박자를 갖춘 온 목수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창의적인 목수란 담아야할 것, 보존해야할 것, 버릴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변 교장은 거의 매일 아침, 학생과 함께 낙대폭포에 올라가‘말뚝 뽑기’(서서히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를 하며 체력을 단련시킨다. 변 교장은 대목수양성과정을 수료하는 학생에게 네 가지를 강조한다.
“한옥학교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라며,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의 주인이 되길 기원합니다. 또 한옥이 그러하듯 느림의 미학과 발효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문과의 네트워크를 강조하는데 우리 학교 만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 예로 노동부 주최 직업능력개발계좌제 심사에서 저희 학교만 유일하게 전국에서 ‘A’등급을 받았습니다. 2007년엔 기숙사건설 공사에 동문이 십시일반 성금을 거둬 함께 지었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변 교장은 앞으로 한옥과 관련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했다.
◆박주용 주임교수=“1998년 대구 흥사단에서 ‘생명자치연대’가 주관한 집짓기 두레모임이 있었습니다. 생태건축 관련 프로그램이었는데 강사가 변숙현 선생님이었지요.”
박주용 청도한옥학교 주임교수(51)는 당시 학생으로 변 교장을 처음 만났다. 그는 두레모임의 회장이었다. 그때 인연을 계기로 지금껏 청도한옥학교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박 교수는 실상 건축과는 인연이 없다. 경북대 공법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해병대를 전역한 뒤 사법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5년간 했는데 인연이 없었던가봐요. 이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승부를 보자는 생각에서 95년부터 건설노동자로 일을 했습니다. 상주에 있는 한 토목회사를 다녔는데, 포클레인 기사보조생활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다 제대로 토목을 해야겠다 싶어 98년 경일대 토목학과에 편입해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했지요. 법대, 해병대에 이어 공대를 다녔지요. 졸업 후 토함산 산악구간도로 건설소장을 할 때 변 선생님을 통해 전통건축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박 교수는 토목을 접고 목수로 입문하게 됐다. 전주 교동 ‘전통한옥문화체험관신축, 창녕 도성암 요사채 신축, 강진 정동 우물보호각 신축, 영월 법흥사 종각 신축, 일본 나고야 무량사 대웅전 신축, 남양주 홍석현씨 별서 신축에 참여했다.
“먼저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대목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건축 현장에 있었지요. 한달에 한 번 집에 들렀을까요. 절, 호텔, 콘도, 민박, 텐트, 컨테이너집 등 가릴 것 없이 잠을 다 자보았어요. 객지밥은 개밥을 빼곤 다 먹었습니다. 심지어 ‘청설모 백숙’까지도 먹어봤다니까요. 현장은 거칩니다. 그냥 서로 ‘어이’로 부릅니다. 욕은 기본이고요. ‘야 이 새끼야, 법대 나와서 이것도 못 하느냐’ ‘법대 나와서 왜 이런 일을 하냐’고 할 땐 몰래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는 한국 최고의 도편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서럽고 힘들었지만 칼을 뽑았다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목수생활 6년간 도편수만 5명을 거쳤습니다. 잘렸다기보다 도편수의 기술과 인격의 한계를 알고 떠난 겁니다. 현장에선 신속, 정확, 안전이 생명인데요. 기술자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는 ‘다름(different)’을 인정하지 않고 ‘틀리는 것(wrong)’으로 치부해버리는 겁니다. 방식이 여러 개 있음에도 그걸 애써 무시하지요. 그건 장인의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수평을 맞추는데 물호스를 사용하는데 레벨기를 설치했더니 처음엔 도편수가 낯서니 치워라고 해요. 나중에 써보더니 좋다고 하면서 인정하더군요. 대목수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박 교수는 목수 생활 5년만에 ‘먹잡이’(도편수 아래 부편수)가 됐다. 보통 10년 정도 걸리는데 도편수가 되겠다는 집념이 시간을 앞당겼다. 2004년엔 한 중앙지 언론사 사주의 한옥별장 건축에도 참여했다.
“그해 10월에 변 교장이 함께 일을 하자고 해서 청도로 오게 돼 한옥학교 4기 때부터 지금까지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시 무형문화재 해강 고택영 선생의 전수자인 김창희 대목장이 실기를 맡았지요.”
그는 학교에서 대목수이론과 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전통건축에 일본어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많다. 다루끼를 오리목으로, 사시가네를 곡자로, 오비끼를 세치각자로 바꿔 부르게 한다. 학생들은 그를 ‘대박, 대구의 박교수)이라 부르고 부산 출신인 박윤철 교수를 ‘부박’이라고 한다. 박 교수는 월말부부에서 주말부부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 특별히 생활이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금귀월래(금요일에 귀가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며 상락재에서 제자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박윤철 교수=박윤철 교수(51)의 교육철학은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끈을 톱삼아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물방울이 떨어져 바위를 뚫음)’이다. 박 교수는 타계한 청도한옥학교 김창희 대목장의 제자다. 대목장이 숨을 거둘때까지 숙식을 함께 했다. 박 교수는 한양대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컴퓨터학원을 하다 사업을 접고 공방을 하려다 한옥학교를 알게 됐다. 그는 개교 1기로 입학했다.
“동기가 저를 포함해 5명인데 3~4명이 현재 도편수를 하고 있습니다. 2기때 20명이 입학했지요. 스승께선 나무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종종 트집을 부리는데 훌륭한 목수는 그것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또 나무를 아끼는 건 기본이라고 하셨지요.”
박 교수는 2005년 5기가 입학해 공부하던 즈음 김 대목장의 조수 겸 교수요원으로 학교에 왔다. 청주 대림선원 마루공사, 수원 봉녕사 선방공사, 문경 윤필암 선방공사에 참여했다. 그는 처음 학생들과 기숙사생활을 함께 하다 스승과 같이 지금의 해운당에서 함께 기거했다. 그 역시 박주용 교수처럼 최고의 도편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현재 문화재 수리기능자이기도 하다. 실기수업의 대부분은 그가 맡고 있다.
“대목장이 되려면 성격이 꼼꼼하고 세밀하면서 성실해야 합니다. 덤벙대면 정밀도가 떨어져요. 이론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고요.”
그가 교수 요원으로 오지 않고 현장에 있었다면 지금쯤 한국 최고의 목수가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손을 젓는다. 박 교수는 한옥의 대중화에 대해 국민소득이 적어도 4만달러는 돼야 제대로 된 한옥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서구 건축물보다는 한옥의 가격이 비싼 게 흠입니다. 가격은 낮추고 편리성을 도모해야 한옥이 대중화될 수 있습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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